여수 선소유적은 옛부터

선소마을'로 불려지는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던 유적이다.

선소마을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소가 있었으며, 조선 성종때의 고지도에는 '선소'로도 기록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면서 이 곳이 전라좌수영(여수)에 속하게 되었고, 또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거북선 제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조선 기술을 지닌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을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거북선은 여수지역에 있던 본영 선소, 순천부 선소 및  방답진 선소 세 곳에서 건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난중일기(1592년)에

의하면 순천부 선소는 임진왜란 전에 생겨 임진왜란 중 전라좌수영 관하 순천부의 수군기지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나 만들어진 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유적으로는 배를 정박시켰던  굴강을 비롯하여 무기 제작처로 추정되는 대장간(풀뭇간),

세검정, 군기창고 등의 터가 남아 있고,  마을 입구에는 벅수가 세워져 있다. 병사들의 훈련장과 적의 동태를 감시 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인 망마산이 주변에 있다.

 

 

 

 

 

 

 

 


 

 

 


동피랑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이다.

통영 시가지 동쪽에 동호동과 정량동, 태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이루는 산의 바위 피랑지대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다. 옛 통영성의 동포루가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푸른 통영21 추진협의회는 2007년 10월 도시재생의 색다른 시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이라는 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통영시가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 목적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하자,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이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강구안 바다 풍경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통영시의 명소가 되었다. 2008민관포럼 최우수상, 2008전국 마을만들기 대회 우수상 등을 받았다.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그 후에는 역대의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왔다.


경내에는 본전,

정문, 중문, 외삼문, 동서재, 경충재, 숭무당, 강한루,  유물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많은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숙종7년(1681)에 60대 민섬통제사가 세운 통제사충무이공충렬묘비이며 

충무공 후손통제사 비각 2동에  6기가 있고, 이운용 통제사 비각,

김중기 통제사 비각, 유형 통제사 비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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